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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회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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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토론방은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1-2부 & 3-4부를 읽고 참여합니다.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에서 대상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요. 특히 지역사회복지는 사회복지의 거시적 접근 방법이자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미시적 접근보다 사회구조적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주는 함의가 많습니다.

1. 먼저 1부 2부를 읽은 후 여러분이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그것을 지역사회복지실천에서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어봅시다. 이 책은 내가 평상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의 내용과 사람과 상황들을 다루고 있고, 그로 인해 각 부분이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기에, 1부와 2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최대한 빠뜨리지 않고 서술하면서, 그에 대해 사회복지실천의 적용부분에 대한 나의 의견을 각각 간단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1부.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1) 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차별을 당한 여성들이나 학교 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남성들이지만, 그들의 몸은 그것들을 기억해서 실제로는 가장 아픈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몸은 정직하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차별이나 학교 폭력 등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는 여성을 차별하거나 학교 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하도록 법안을 개정하고 시행을 잘 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미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2) “불평등한 여름, 국가의 역할을 묻다.”에서는 먼저, 1995년 시키고 폭염재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연구 결과,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폭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의 증가가 컸었음이 드러났고, 공동체적으로는, 범죄자나 마약판매상 등이 많은 지역의 불안한 치안으로 인한 공동체가 와해된 곳이 폭염에 취약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1999년의 폭염에 대한 시카고의 대응에서, 사회복지사로서의 내가 만일 폭염의 상황에 처했을 때 거시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의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새로웠던 부분은 에어컨이 작동하는 ‘쿨링센터’를 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 보다도 에어컨이나 선풍기 설치가 각 가정에 잘 되어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한국 실정에는 ‘쿨링센터’ 보다는, 1인 가구 노인들이나 취약층 가정을 중심으로 가정방문을 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폭염 뿐만 아니라, 여러 자연으로 인한 재난 상태가 벌어졌을 경우에 쓸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3) “낙태를 금지하면 벌어질 일들에 관하여”에서는, 루마니아에서 낙태금지법 시행 후에 생긴 일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의사에게 뇌물을 건내 거짓 진단명을 받아 낙태를 시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은 의사의 도움없이 위험한 방법으로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여성들은 여러 합병증을 앓으면서 사망하기도 했다. 또한, 낙태금지법을 피하기 위한 우회로를 찾지 못한 여성들은 결국 출산을 했고, 이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시설에 맡겨졌다. 하지만, 열악한 시설에서 아이들은 영양 결핍에 시달렸고, 이것은 유아사망률 증가로 이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낙태 금지법으로 인해 음성적으로 실행된 낙태율이 늘었고, 그로인해 생명을 잃는 데에까지 간다는 사실이 참 마음 아팠다. 하지만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여러가지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특히 저자는,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성별이 여성인 태아가 먼저 낙태의 고려 대상이 되었던 한국의 상황 역시 별 다를 바 없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돈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낙태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임신 막달까지 모든 사유의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불법 유통되는 낙태약을 여성들이 먹고 집에서 혼자 아기를 낳아 변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은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복지사로서 개인적으로는, 미혼 임산부나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낙태를 하려는 여성들과 일단 상담을 잘 진행해서 낙태를 하든 출산을 하든, 임산부나 아이 생명이나 건강에 지장이 없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거시적으로는, 낙태법 개정 방향에 힘써서, 위기 임신의 고통 속에 있는 여성을 지원하여 살릴 수 있는 아기는 살리고, 낙태를 선택한 여성은 안전한 의료 시스템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가난은 우리 몸에 고스란히 새겨진다”에서는, 해부학 연구에 쓰인 가난한 주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800년대에 가난한 사람들 중심으로 그들의 시체가 해부학 연구에 쓰였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살아 있을 때의 경제적 불평등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점 이외에도, 가난은 인간의 몸을 변화시키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에서 발견된 부신은 비정상적으로 컸었기에, 해부학의 역사에는 여러 오점이 남게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오랜 시간 사회적 금기였던 인체해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몸을 발판으로 한 걸음씩 전진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해부학적 지식 뒤에는, 가난으로 인해 물건을 훔치다가 사형을 당한, 가난으로 인해 구빈원에서 죽어갔던 이들의 몸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빈곤으로 인하여 자신의 장기를 파는, 불법 장기매매에 대한 것이 생각이 났다. 파산 신청을 안 받아주는 국가일수록 이런 불법 장기매매는 더 잘 일아난다고 한다. 불법 장기매매와 관련해서는 적발된 건수보다 실제로 더 많은 불법 장기매매가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장기매매의 경우 장기매매를 빙자한 사기, 성범죄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적발 시 엄중한 조치를 통해 장기매매가 우리 사회에서 근절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장기를 파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곧 ‘가난’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에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를 해부학 연구에 사용한 것이나, 오늘날 불법 장기매매가 성행하는 것이나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이 된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서민들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자고, 입는 것의 걱정은, 또한 아플 때 병원비 걱정하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그러한 복지국가를 구현하는 것일 거다.

5)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에서는, 질병의 원인은 개인 차원에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 등,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들이 얽혀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 그물망을 만든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일까라는 것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세부 내용으로는, 일터가 안전하면 노동자의 금연율이 올라가고, 고소득 국가에서는 관리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취급받는 AIDS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여전히 치명적이고 주요한 사망 원인이 됨을 이야기 한다. 또한, 1991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무너지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동유럽 국가들이 극심한 경제위기를 경험하게 되고, 평균수명이 급격이 감소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사람을 아프게하는 ‘원인의 원인’을 볼 수 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 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기시킨 것이다.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 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그러기에,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만나게 되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아픈 이유가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 원인을 생각해 봐서, 그 원인을 제공한 거미가 무엇인가를 찾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할 실타래를 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2부.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1) “해고노동자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에서는 2009년에 해고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리해고와 공장점거 파업에서 겪은 일들이 전쟁포로로 잡혔던 경험만큼의 깊은 상처를 몸에 냈고, 더 아팠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국가는 안전망이 되어주지 못했고, 그 짐을 해고자와 그 가족이 온전히 떠 안았다. 이 사건 이후 6년 동안 국가는 해고자와 가족이 다시 설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했고, 쌍용자동차 관련 노동자와 가족 28명은 죽음으로 이 재난의 사회적 의미를 알려 주었다. 한국과 같이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없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반대의 예로, 1991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자의 10퍼센트가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도 ‘스웨덴’의 자살률은 오히려 꾸준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실업률과 자살률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결과는 왜 이리 여실히 다른 것일까? 그것은 국가의 안전망 차이일 것이다. 사회복지사로서, 거시적 관점으로서는 국가에서 실업연금이나 재취업 교육 시설과 투자를 더 늘려서,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삶과 아픔을 잘 들어주며 그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해주고, 나라에서 제공하는 여러 혜택과 지원들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2)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에서는,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과 IBM 직업병 소송, 연구자가 거대 기업에 맞선다는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삼성이나 IBM같은 거대 기업에 비하면, 그 곳에서 일하다 질병에 걸려 고통받는 한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것은,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치기 같은 모양새일 것이다. 사회복지사로서 이러한 상황에 있는 한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 승산없는 싸움 같으나 최선을 다해서 함께 이 과정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인 요즈음의 이점을 잘 사용해서, 이러한 경우에는 동료 사회복지사들과 합의 과정을 거친 후, SNS 상에서 언론을 조장하는 한 방법을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3) “위험한 일터는 가난한 마을을 향한다.”를 읽으면서는, 개인적으로는 양심적인 질문을 마음에 해 보았다. 일본의 질병을 나르는 레이온 기계가 한국으로 왔다가 다시 중국으로 가는 것이나, 발암물질 석면 공장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다가 다시 다시 동남아로 가는 과정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경제적 이득을 아주 많이 주는 비싼 기계가 인체에 해롭다는 이유로 폐지 위기에 처했졌을 때, 그것을 과감하게 처분할 수 있는 용기를 나는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물론, 결론은 “Yes”이지만, 꽤 고민을 해 보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기업인 ‘삼성’ 역시 ‘위험의 회주화’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 삼성 본관이 위치한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단체들이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사회 복지사로서, 이러한 부분에 맞닥뜨려졌을 때, 이 노숙농성에 동참하면서, 해당 클라이언트 뿐만 아니라, 제 2의, 제 3의 피해자기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서는 고용불안과 ‘저성과자 해고’라는 함정, 언제 해고될 지 모르고, 또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또 쉬는 만큼 그대로 월급이 깎이는 비정규직원들은 몸이 아파도 덜 쉰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 역시 언제 해고될 지도 모른다는 고용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로 인해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부터 한국에서의 자살률은 급격하게 증가한 것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해고된 이들을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위의 1)번 “해고노동자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부분과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실천법을 실행하면 될 것이다.

5)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의사들”을 읽으면서는, 인턴들이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메디컬 드라마를 본 기억이 많이 났다. 이 챕터에서 저자는 연구자가 되어 다시 전공의 근무환경과 환자 안전을 물으면서, 전공의들이 지금처럼 일할 때, 환자는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전공의가 의료과실을 저지를 위험이 높아진다. 의료진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해야, 환자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의사이기에, 의료진 본인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전공의 및 의료진의 수면이나 노동시간 조절 등 병원에서의 노동 환경을 다루는 법의 개정과 그에 대한 시행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사회복지사로서 그러한 부분이 시정될 수 있는 데에 영향력을 미쳐야 할 것이다.

6)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 , 그들이 아프다”에서는 소방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방공무원들은 추간판탈출증, 우울증상, 불면증 또는 수면장애, 전신 피로. 폐암을 비롯한 만성병 등에 많이 시달리고들 있다. 그들은 화재현장에서 여러 발암물질에 노출되지만, 그 노출이 제대로 측정된 적이 없어서. 공무상 요양으로 치료받기도 매우 힘들다. 또한, 일하다 다친 소방공무원 8명 중 7명은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지 않는데, 이유는 혹시라도 부상으로 인해 ‘기관의 행정평가상 불이익이 있을까 봐 그런단다. 사회 복지사로서, 소방 공무원을 위한 복지 실천을 거시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본다면, 잘은 몰라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보자면, ‘기관의 행정평가’ 부분의 시정이 시급할 것 같다. 지금 그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조건이 소방 공무원들이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가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 이들이 아프게 하지 않도록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들이 아팠을 경우에 그것에 대한 책임은 져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만일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아픈 소방 공무원을 돕는다면,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기관의 행정평가 부분의 시정을 요구하며, 나의 클라이언트가 정부나 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2. 이어 3-4부에서는 재난과 성소수자 그리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려나가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재난에 대하여

세월호, 전쟁, 홀로코스트 등과 같은 재난은 사람들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질병에 시달리게 한다. 저자는 이들을 위해서 ‘명예회복 – 보상 – 처벌 –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사과 없는 일본에 반하여, 1970년 12월 7일,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독일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이 행동은 당시 세계에 큰 놀라움을 안겼다. 보수•우익 세력의 맹렬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브란트 총리는 이후 저서에서도 "독일의 비참한 과거사와 살해당한 수백만 명에 대한 가책으로 했던 일"이라고 언급하며 참회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폴란드에 사죄를 해왔고, 50주년을 맞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독일에 10여년 거주 중인 나는, 좋지 않은 일로 희생당한 약한 사람들을 위해 때마다 각 동네마다 작그마하게 촛불과 꽃으로 그들을 기리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그 때마다, 좋지 않은 일로 희생당한 자들을 잊지 않고 때마다 기억하여, 앞으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의지를 굳히는 것 같아, 그 때마다 독일이 왜 선진국이 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긍정이 나온다. 나는 우리 한국도 “정직, 인정, 꾸준, 사죄, 보상”이라는 단어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수든 의도했든 상관없이 세월호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시, 우선 정직하게 사건의 전후를 잘 관찰하고 검토하여 잘못된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할 부분은 사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 줘야 하며, 이러한 행위는 단 번이 아닌, 한 동안은 매해 기념일처럼 사회에서 먼저 꾸준하게 기억을 해 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지금 일어난 재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기록, 기억하지 않으면 그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우리 한국 사회도 앞으로는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 보상, 꾸준히 기념하여, 재난을 당한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 마음에 한이 쌓이게 하거나, 같은 재난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성소수자에 대하여

성소수자는 LGBT라고도 하는데, 곧,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 (Transgender)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로서, 자신과 같은 성별을 좋아하는 사람(LG), 여성과 남성 모두 좋아하는 사람(B), 육체와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T) . LGBT뿐만 아니라 연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무성애자)이나 성의 특징을 정하고 싶지 않거나 모색 중인 사람(퀘스처닝) 등 여러 사람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성애는 질병이나 정신병, AIDS의 주범이 아니며, 대부분의 이성애자가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이성애자가 되지 않은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스스로 선택하여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또한 저자는,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몸이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동성결혼 금지법이, 낙인과 차별이 성소수자의 건강을 해친다고 말한다. 그는 동성애자를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이 책의 저자 이야기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머리로는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도 했다. 하지만 막상 실제 상황에서 내 옆에 성소수자가 있다고 생각을 해 보니, 이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겠다 싶었다. 어떠한 이유로 성소수자가 되는 지 잘은 모르겠으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후천적인 올바르지 못한 성관념과 무절제 때문에 성소수자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등의 중독처럼, 혹은, 돈 맛을 아는 사람들은 돈을 계속 벌려고 하는 것처럼, 한 번 동성을 향한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실행한 사람들은 그 욕구를 끊지 못하고 계속 그 쪽을 향하여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본다. 성별을 떠나서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도 초등학생 때, 같은 반 반장이었던 여자친구의 매력에 잠시 빠졌었던 적이 있다. 성별을 떠나서 그냥 그 친구가 너무 멋지게 보였었다. 만일 그 때 나에게 ‘자제력’이 없었다면, 나 역시 성소수자로서 지금 열심히 퀴어축제에 참석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 책의 저자의 성소수자에 대한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 수가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그리고 실제의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지인 중에는 성소수자가 없고, 내가 따로 이들을 찾아가지 않는 한 나는 평소에 이들에 대해 별 생각없이 지낼 수 있어서, 이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를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하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그 가운데에 성소수자가 없으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 때 내가 나의 성소수자 클라이언트를 어떻게 대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실지로 그들과 부닥치면서 그 때 내가 느끼고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있을 것이며, 그 때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며 도와줄 지는 미래의 나의 몫으로 남겨둔다.

3) 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려나가는 일들에 대하여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이웃, 직장 동료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며 함께 살아간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회적 관계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사회역학자들은 연구했다. 문화적 이동성이 심장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같은 조건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점액이 덜 만들어지고 코에 있는 섬모가 더 활발히 활동하고 바이러스를 외부에 덜 유포시킨다는 결과, 즉 감기에 덜 걸린다는 실험 연구가 출판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더 오래 산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 예로, 저자는 ‘로세토 마을’의 예를 든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 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로세토 마을의 사회적 요인이,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호부조 하는 문화가 심장병을 예방한 것이다. 로세토 마을을 읽으면서는 예전의 우리나라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마을 사람들은 이웃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로 서로 친했다고 한다. 이웃의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은 함께 슬퍼해 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상부상조하는 우리의 문화였다. 오랜 시간 방영했었던 ‘전원일기’라는 드라마도 갑자기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야말로 서로 부대끼면서 싸우기도 하고 함께 뒹굴기도 하는, ‘인간적’인 정이 오가는 공동체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기에 로세토 마을에 대해 읽으면서 ‘전원일기’가 생각 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한국 문화도 서서히 개인화가 되어 가기 시작했고, 아파트가 많이 들어 선 오늘 날에는 바로 옆의 이웃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를 정도로 서로 관심이 없이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오늘 날의 현실 속에서, 육체나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예전의 그 인간적인 공동체가 좋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싶었을 것이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려 나가기 위해서, 한 개인의 사회 복지사로서 나라 전체의 구조를 다시 옛날로 되돌리자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보다는, 작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실천할 수 일들부터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옛날과 같은 인간의 정이 고갈되고 있고, 대중 속의 고독을 느껴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함께’라는 의식과 ‘공감’이라는 단어가 큰 약효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클라이언트의 감정에 깊게 공감해 주고, 그가 맞닥뜨린 문제나 위기를 잘 파악하여 그가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이 되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필요하다면 여러 사회적인 기관들이나 더 나아가서는 정부부처 등의 협력을 구하여, 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려나가는 일을 함께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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